흑석동에는 언덕길과 계단이 많다. 거미줄처럼 엮여있는 흑석동 골목길은 기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전달한다. 한 계단, 한 계단 세월과 삶의 흔적이 묻어있는가 하면 어느 날은 처연한 느낌을 자아낸다. 봉황사 또한 마찬가지다. 회색의 고급 주택가 사이, 빨간 대문과 나무간판을 가진 봉황사는 주변과 잘 어울리지 않는 생경함과 동시에 흑석동에 잘 녹아있다는 생각이 드는 신비로운 장소다.

가을 햇살을 시기하듯 구름이 낀 10월 19일 오후, 날씨 때문인지 아니면 시험과 과제가 코 앞으로 다가온 까닭인지, 마음 한 구석 자리잡은 갑갑함을 털어버리기 위해 중앙대학교 병원 앞에서 봉황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. 서울특별시 동작구 흑석 1동 186-67번지. 봉황사를 찾아가기 위해 흑석동 성당과 중대먹자골목을 양 옆으로 끼고 골목을 따라가자 곧 완만한 언덕길이 나타났다. 느린 걸음으로 언덕길을 올라가며 봉황사의 모습을 상상하자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자주 찾았던 성암산 수정사가 떠올랐다. 흑석동 고지대에는 왠지 모르게 그런 산사(山寺)가 하나쯤 있어도 어울린다는 생각. 그리고 그 당시 산사에서 느꼈던 고요함과 평온함이 떠올랐다. 하지만 길을 따라 5분쯤 걸어 올라가 고개를 들자 상상과 달리 고급 주택가 가운데 집을 개조한 듯한 봉황사가 눈에 들어왔다.

	▲ 고급 주택가 사이에 자리잡은 봉황사. 2층의 가정집과 3층의 법당이 완전히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.

봉황사는 빨간색 철재 대문과 나무로 된 간판, 그리고 플라스틱 초인종이 일주문(一柱門)과 고풍스러운 현판(懸板), 풍경(風磬)을 대신하고 있었다. '과연 이 곳에서 갑갑한 마음을 털어버릴 수 있을까?'

하지만 이런 생각도 잠시, 비구니(출가하여 불교의 구족계(具足界)인 348계를 받고 수행하는 여자 승려 [출처]네이버 백과사전)의 안내를 받아 일반 가정집 같은 2층을 지나 법당으로 꾸며놓은 3층으로 올라서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. 불상을 안치하는 수미다(須彌壇)과 신중을 모시는 신중단(神衆壇), 그리고 영가를 모시는 영단(靈壇)이 갖춰져 있었다.

그리고 각 단마다 탱화가 모셔져 있고 천장에는 산사의 마당과 같이 수 셀 수 없이 많은 연등이 걸려있었다. 무엇보다 법당 내에 은은하게 나는 향 냄새와 비구니의 인자하고 친절한 설명이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다. 설명에 따르면 봉황사는 25년 전 주택을 개조해서 개창(開創)했고, 지금은 노(老) 비구니 1명과 자신이 절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고 한다. 또 주택가와 가까운 이점 때문에 흑석동 주민들이 자주 들러 불공을 드린다고 했다.

사진촬영과 간단한 취재를 마치고 나오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긴 듯 상추와 호박이 자라는 마당 한 켠의 텃밭이 인상깊게 눈에 띄었다. 녹색과 흙색의 조화를 마지막으로 정성스럽게 사진에 담았다. 빨간 대문을 나서면서 한 주민이 봉황사 방향으로 합장하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나도 돌아서서 합장한 후 올라온 길을 따라 내려갔따. 가벼운 발걸음으로 '봉황사는 흑석동에 참 잘 어울린다.'는 생각을 하면서...... 

   흑석동 봉황사 가는 길

 

 

가는 길 : 중앙대학교 병원에서 THE FACE SHOP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넌 후  GS25 편의점과 신한은행을 사이에 끼고 한강 방향으로 150m 정도 걸어간다. 이 후 소화 꽃집 방면의 길로 빠져 흑석동 성당 벽을 따라 중대먹자골목 쪽으로 나아간다. 이 후 흑석동 주민센터 방면으로 접어들면 완만한 언덕길이 펼쳐진다. 언덕길을 따라 150m 정도 올라가면 빨간색 철재 대문의 봉황사를 만날 수 있다.

문의 : 대한불교 조계종 봉황사 ☎ 02-816-1685

이재진 기자 tiym@naver.com